부엌칼을 가지고 나쁜 것이니 좋은 것이니 따지는 사람은 없다. 필요하면 사용하고 필요하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을 뿐이다. 부엌칼이 살인사건에 이용되었다고 해서 세상에서 부엌칼을 없애자고 주장을 한다면 제정신인 사람으로 대우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골프에 있어 내기 또한 마찬가지로 그 자체를 가지고 좋은 것이니 나쁜 것이니 따지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나름의 필요와 용도가 다 있는 것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항상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문제일 뿐이다.
성직자도 골프를 하고 속칭 양아치도 골프를 한다. 보다 쉬운 말로 하면 좋은 사람도 골프를 하고 나쁜 넘도 골프를 한다. 골프는 시간과 돈 그리고 신체만 뒷받침이 되면 하고 싶은 사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으로 골프실력은 그 사람의 됨됨이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또한 세상에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이렇게 두 종류의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다. 좋은 사람과 나쁜 넘 사이의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애매한 상태의 사람들이 다 존재를 하고 더구나 한 사람이 늘 좋은 사람이거나 나쁜 넘인 것도 아니어서 때로는 좋은 사람도 되었다가 나쁜 넘도 되기도 한다. 또한 골프 할 때 나쁜 넘이라고 해서 다른 면에서까지 모두 나쁘기만 한 넘이라는 것도 아니고 마찬가지로 다른 면에서 좋은 사람이었다고 하더라도 골프 할 때도 여전히 좋은 사람일 것으로 단정을 짓는 것 또한 무리다.
생각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갈등이라는 것이 반드시 어느 한편 또는 양쪽에 무슨 잘못이 있거나 나쁜 넘이어서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훨씬 더 많은 경우에 있어서 갈등은 무슨 특별한 잘못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상호간에 아무런 과실이 없어도 서로 다르기 때문에 발생을 한다. 사실 그저 다르기만 해서는 아니고 자신의 방식을 일방적으로 상대방에게 강요하면서 발생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강요란 반드시 의도적인 강압을 수반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고의로 강압적인 경우보다는 그저 자신에게는 아무런 거리낌 없는 자연스러운 행동이 부지불식간에 상대를 곤혹스럽게 만들게 되는 것이 더 흔할 경우가 될 것이다.
사람이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필자는 잘 알지 못한다. 더구나 설사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말이나 글로써 설명하는 것은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니다. BC 500년경의 제논의 패러독스라는 것이 있다. 토끼가 앞서 출발한 거북이를 결코 따라잡을 수 없고 시위를 떠난 화살은 결코 과녁에 도달할 수 없다 얘기들인데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과 너무도 동떨어진, 그래서 누구라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임을 순간적으로 알 수 있는 이런 말싸움조차도 말과 글로써 극복을 하기까지는 2천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야 했다. 1700년대 뉴턴이 등장하여 극한의 개념을 정리해내기까지 말이다. (물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발표 이후에 새로운 철학적 의미가 부여되고 있기도 하지만 고대인들의 의식수준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다).
물론 우리의 느낌이나 직관은 완전하지 않을 뿐 만 아니라 때로는 적극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터무니 없는 미신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무시하기만 해서는 제논의 역설과 같은 궤변에도 2천년을 방황해야만 한다.
적어도 골프에서 내기를 인식하는 데 있어서는 느낌 그대로의 직관이 유효하지 않을까 싶다. 골프에 있어 특정의 사람들과 내기를 함에 있어 이 컬럼의 독자들이 즐거움을 느낀다면 그 누가 어떤 험담을 한다고 해도 여러분은 분명 그 사람들과 내기를 함으로 해서 행복해진 것으로 그 사람들은 여러분이 골프를 즐기는데 있어 고마운 사람들이다. 반면 불쾌감을